'디자인'이 한국 기업의 미래 경쟁력   2005-05-12   평범하기 그지없는 투명한 유리잔에 유명 디자이너들의 그림을 다양하게 코팅 인쇄해서 팔기 때문에 사서 모으는 재미가 쏠쏠한 것이다.  생산단가가 2마르크에 지나지 않는 이 유리잔은 17마르크에 팔리며 새로운 생활문화로 정착됐다. 첨단 하이테크놀로지는 아니지만 참신한 아이디어와 그 아이디어를 뒷받침해준 수준 높은 디자인의 승리인 것이다. 부가가치란 반드시 첨단 기술과 엄청난 투자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님을 뒷받침해주는 사례다.  ◇숨겨진 경쟁력의 원천, 디자인 이른바 '잘 나가는 기업'들은 나름대로의 핵심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월마트는 가격, 토요타는 품질, 3M 하면 혁신 문화 등이 간판처럼 따라 다닌다. 최근 선진기업을 중심으로 이러한 핵심역량 중 디자인의 중요성이 급격히 부각되고 있다.  필립스는 '제품성공 여부의 80%를 디자인이 차지하고 있다'는 비전을 갖고 있고 IBM은 '좋은 디자인이 곧 좋은 사업(Good design is good business)'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는 등 생산 중심적 경영에서 디자인 중심 경영체제로 전환하고 있다.  생활수준이 높아지고 소비자들의 욕구가 다양해지면서 가격, 품질, A/S보다 새로운 색상, 모양, 크기와 같은 디자인 요소들이 구매 요인으로 떠오르자 기업들도 민첩하게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상당수 제품들이 이미 상용화 되면서 제품의 기능적 차별성이 약화된 것도 기여했다.  우수한 디자인의 제품은 제품 수명 주기에서 도입기나 성숙기에 기업 모두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우수한 디자인으로 가격 프리미엄에 마니아층 고객까지 확보할 수 있다. 과거 노트북 시장에서 주된 경쟁의 패러다임은 CPU, 메모리, LCD 크기 대비 가격이었지만 최근 무게, 색감, 촉감 등 디자인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한 애플, 소니의 노트북이 인기를 끌고있다.  데스크탑 PC도 마찬가지. 품질 격차가 좁혀지고 가격 경쟁이 본격화 되면서 제품간 차별화가 어려웠지만 최근 슬림 PC의 등장으로 소형화 디자인이 차별화 포인트로 부각됐다. PDA, MP3 플레이어 역시 디자인이 제품을 선택하는 관건이 되고 있다.  미국 DMI(Dsign Management Institute)의 연구에 따르면 디자인 역량이 우수한 기업은 그렇지 않은 기업들보다 매출, 이익, 주가 등이 높게 나타났다. 디자인 경쟁력이 기업성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 디자인 경쟁력 어디까지 왔나 전통적으로 디자인이 중시되던 패션이나 뷰티산업 이외에 가전, 정보통신 분야에서 이러한 추세는 확연히 감지되고 있다. 대표적 제품이 핸드폰. 이동통신 단말기가 기계가 아닌 패션 상품으로 자리잡으면서 소형화, 다양한 색깔과 모양, 기능 등 디자인이 중요해졌고 삼성, LG 등 국내 기업들은 이에 기민하게 대응했다. 이러한 노력은 세계 시장에서 한국의 경쟁력을 높이는 결과를 낳았다. 해외제품보다 높은 브랜드 선호도와 가격 프리미엄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가 소득 2만달러 시대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100점짜리 디자인 지식을 갖춘 인재가 여럿 있어야 한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지난달 밀라노 가구쇼에서 한 말이다. 삼성은 그만큼 디자인 인재 확보에 혈안이 돼 있다. LG전자도 미국, 일본, 중국, 인도에 이어 이탈리아 밀라노에 디자인 연구소를 설립하고 전세계 디자인 흐름을 반영하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디자인 프리미엄의 수혜를 맛본 이들 기업이 디자인 투자에 박차를 가하는 것은 당연지사. 한국기업이 중국기업을 따돌릴 수 있는 경쟁우위의 요소를 꼽을 때도 디자인이 가장 먼저다. 현재 중국보다 가격내지 품질에서 경쟁우위를 갖지 못한 분야에서 디자인 역량을 육성하지 못하면 섬유산업에서 중국에 뒤쳐진 경험을 되풀이 할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디자인 개발을 둘러싼 경쟁구도는 기업단위를 벗어나 국가단위로 확대되고 있다.  머니투데이 김희정기자 dontsigh@moneytoday.co.kr